2021년 상담 후기 공모전 개인상담 부문 성장상 수상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
개인상담 부문
학생상담센터를 알게 된 날은 추운 바람이 몸을 스치는 1월의 어느 날이었다. 비참한 기분으로 버스에 내렸고 건물까지 가는 내내 왠지 바람은 더 시리고 매몰차게 휘몰아치는 것 같았다. 기분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정말 비참했다. 처음 상담센터를 방문하게 된 이유는‘학사경고자상담 때문이었다. 2019년 2학기를 등록만 해놓고 수업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단한 설문지 조사를 하고 상담사님을 기다렸다. 혼자 있었지만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한 자괴감, 수도 없이 말했던 나의 사정을 또 설명해야 해야 할 것 같은 절망감으로 뒤섞인 복잡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초초한 기분으로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시자 이윽고 상담사님이 들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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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황한 설명을 들으니 상담사님은 단번에 상황을 간파하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부모님은 바꿀 수 없지만 ㅇㅇ씨는 바뀔 수 있다고. 충분히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교내에 상담센터가 있는데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하셨다.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병원에 가는 것도 가기 싫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부모님 손에 질질 끌려갔는데 상담이라니.‘상담’한마디로 내가 남들보다 부족하고 뒤떨어지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방인으로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담사님은 학교 상담센터와 학업과 병행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상담을 시작하면 학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에게는 ‘죽음’이외에 다른 희망은 없다고 느꼈다.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먼저처럼 사라지는 것이 유일한 나의 삶의 목표였다.‘전 글렀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고. 정말 필요하면 스스로 찾아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상담사님과 절대 나쁜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 그리고 상담센터를 찾을 거라 손가락을 걸며 약속까지 하고 터덜터덜 밖으로 나왔다. 그게 내가 겪은 상담센터의 첫인상이었다.
그때의 나는 계속 복용하던 약을 임의로 중단하던 상태였다. 삶의 의지가 없었던 나는 모든 곡기를 끊었고 살은 나날이 빠지고 있었다. 약을 먹을 의지도 없고 약 또한 몸에서 버텨낼 수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를 절망 속에 살고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의사인 작은 아빠와 상담 공부를 했던 고모에게 의지하며 근근이 살아냈다. 어쩌면 죽어가고 있었다가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첫 상담센터를 나온 후에도 밥도 먹지도 않고 약도 먹지도 않고 산송장처럼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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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원을 꾸준히 다니고 약을 잘 복용하면서 이겨내고 있다. 나는 나의 건강을 위해 매일 30분씩 운동한다. 오히려 살이 자꾸만 찌고 있어서 고민하고 있다. 나는 이제 내가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임을 안다. 나는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소리내서 웃는다. 엄마도 이제 소리 내서 웃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죽음’이라는 단어와 ‘자살’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무게를 가진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살아간다. 그중에는 아픔을 품고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누구보다 상담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나는 결국 상담사님과 약속했던 대로 상담센터를 찾아갔고,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상담을 받았고, 상담사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랐으며, 상담으로 부족하고 뒤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이방인이 아니라 조금 더 단단해진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상담은 그냥 불완전한 인간이 단단해지기 위해, 연약한 인간의 마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완전히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픔이 상담을 통해 결국 길이 되었던 것처럼 상담을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이고 아픔은 길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종결을 할 무렵 언젠가 상담사님이 물어보셨다. 학교도 가지 못했을 만큼 심각했던 내가 상담사님이 깜짝 놀랄 만큼 어떻게 이렇게 좋아졌냐고. 나는 대답하고 싶다. 그것은 단지 상담사와 내담자로서의 관계가, 전달되었던 마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고 위하는 그 어여쁜 마음 때문이라고. 그 마음이 하늘도 감복시킨 것이라고 말이다. 엄마에게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을 상담사님께 들었고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상담사님께 했고 나는 내내 상담사님을 엄마처럼 의지했다. 그리고 상담사님은 정말 진심으로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워주셨고 ‘사랑’으로 나를 보듬어 주셨다. 상담으로 인해 나는 나도 성숙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또 다른 나를 만났으며 그리고 엄마를 얻었다. 그리고 22회기 동안 나의 또 다른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지지대 삼아 험한 세상을 무사히 무사히 헤쳐 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상담사) 엄마,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