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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상담 후기 공모전 개인상담 부문 변화상 수상작

등록일 2021-03-04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2661

학생생활상담센터에서 직접 개인상담을 받은 경험을 녹여 만든 에세이입니다.

상담 후기를 읽고 나누시길 바랍니다!  

 

2020년 상담 후기 공모전 개인상담 부문 변화상(2등) 수상작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본 순간

 

스물 두 살의 겨울은 성인이 된 후 나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수업 과제로 성격강점검사 해석상담을 들으러 상담실에 처음 갔던 날, 해석을 마치고 정말 사소한 고민이라도 괜찮으니 언제든 상담실에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충동적으로(?) 손을 들고 상담을 신청했고, 거기서 꾹꾹 눌러왔던 나의 감정이 터져버렸다.

상담선생님께 내가 처음 한 말은 이 검사에서 나온 내 성격이 너무 싫어요.”였다. 상담선생님께서는 어떤 것이 싫냐고 물으셨고, 나는 그때 성격강점검사에서 내 성격으로 나온 것들이 다 싫다고 말했다. 사랑, 친절, 감사.나는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상 남들 눈치보고 배려하고, 맞춰주고, 정작 내 이야기는 못해서 끙끙 앓는 착한척하는 내 성격이 싫었다. 그래서 난 내 성격을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가족문제였다. 구체적으로 성격 때문에 어떤 것이 힘든지에 대해 이야기 하다 보니, 항상 가족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 했다.

우리 집은 재혼가정인데,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다. 엄마와 언니 사이의 갈등, 동생들과 새아버지 사이의 갈등, 엄마와 친아버지 사이의 갈등, 엄마와 동생들 사이의 갈등이 모든 상황에서 항상 나는 중재자였다. 나는 우리 가족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했기에 어떻게든 모두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썼다.

나는 상담선생님께 우리 가족이 왜 갈등이 있는지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엄마는 동생들이 잘못하면 새아버지 눈치가 보이고, 동생들은 새아버지에 대한 불편함이 있고, 새아버지는 거리감이 있다 보니.” 그렇게 열심히 가족들의 입장에서 설명하던 중 가만히 들으시던 선생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그럼 00 씨는요?”

나는 그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내 기분이 어떤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가족들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나는 알 수 없는 서러운 감정이 터져 눈물이 나왔고, 울면서 말했다. 나도 엄마랑 아빠가 이혼할 때 힘들었고, 갑자기 새아버지가 등장했을 때 혼란스러웠다고. 그리고 엄마가 상처 주는 말 했을 땐 너무 아팠다고. 나도 언니처럼 소리치고 따지고 울고 싶었다고. 선생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는 이때까지 어떻게 참았냐고 하셨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나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구나.”

내가 지금까지 힘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선생님께 인정받고, 받아들이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엔 억울함이라는 또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항상 가족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정작 가족 중 누구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하고. 억울한 감정과 함께 과거의 힘들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감당하기 힘든 우울함이 몰려왔다.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면 너무 억울하고 슬퍼서, 시시때때로 눈물이 흘렀다.

그때부터 상담실에 가서 어릴 때부터 겪었던 가정사에 대해 하나 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그로 인해 힘들어하던 엄마, 초등학교 때부터 동생들을 돌보며 애늙은이가 되었던 나, 엄마의 외도를 목격했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중학생의 나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나는 매일을 울었다.

나는 매일을 울며 상담을 받고 더 힘들어진다고 느꼈고, 상담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상담선생님께 상담을 받고 더 우울해지고 힘들다. 매일 우는데 괜찮은 것이냐고 물어봤다. 선생님께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이때까지 외면하고 묵혀뒀던 감정이 올라온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불안한 마음을 접어두고 다시 한 번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상담선생님께서는 감정카드를 활용해 상담시간 내에서 감정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여러 가지 감정이 적혀 있는 카드 중에서 몇 개를 골라보라고 하셨고, 나는 그 감정을 보고 떠오르는 나의 느낌이나 과거의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내 감정들을 풀어나갔다.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에 대한 원망이 강해졌을 땐, 선생님과 역할극을 통해 엄마에게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들을 쏟아냈다.

그렇게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감당할 수 없이 올라왔던 나의 감정에 대해 분출하고, 내 감정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복잡하게 얽혀있던 마음속의 상처들이 차차 정리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고, 그렇게 상담은 끝이 났다.

상담을 받기 전 나는 힘든 일이 있거나 우울한 기분이 들면 그 감정을 어떻게든 무시하려고 애썼고, 어떤 일이든 지나가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온전한 내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고, 그것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내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과거에 겪었던 상처들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자주 불안하고, 눈치보고, 이따금씩 우울해지는 사람이지만 상담을 받고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울한 나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지금의 나는 우울한 감정이 들면 생각한다. ‘, 나 지금 우울하구나. 그럴 수 있어.’ 그리고 무엇 때문에 우울한 것인지 생각해본다. 우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집요하게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이제는 우울해지면 무엇 때문에 우울한지 빠르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고, 예전보다 더 빨리 그 감정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첫 상담은 예상치 못하게 물밀 듯 떠오른 과거의 기억들로 그 과정은 너무 힘들었지만, 내 감정을 처음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상담을 마친 그때의 나를 칭찬해 주고 싶고, 혼란스러웠던 나를 이끌어준 상담 선생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난 앞으로도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든 상담실 문을 두드릴 것이다.

 

 

 

 * 본 작품의 저작권은 대구대학교 학생생활상담센터에 있으며, 무단 도용 및 사용을 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