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상담 후기 공모전 개인상담 부문 성장상 수상작
학생생활상담센터에서 직접 개인상담을 받은 경험을 녹여 만든 에세이입니다.
상담 후기를 읽고 나누시길 바랍니다!
2020년 상담 후기 공모전 개인상담 부문 성장상(1등) 수상작
멈춰진 쳇바퀴 위를 다시 올라가기까지
“나는 또 운다.
공부해야 하는데 눈물이 난다 슬픈 일이 없는데 슬프다.
슬픈 감정이 드는 이유가 없는데 감정이 든다.
진짜 모르겠다 내 감정을 모르겠다 말을 못 하겠다.”
2020년 6월 10일 나의 개인 블로그에 작성한 글이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이 글을 작성했을 때의 나와 다를 게 없다면 현재 이 공모전을 준비하는 나 자신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썼던 기간으로 돌아가 보자 2020년 5월 가정의 달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가 여전히 계속되어 불안함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확진자의 속출이 빈번했고, 혹여나 우리 가족이 걸릴까 봐 불안에 떨면서 소독하고 또 소독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지인들을 만나 놀았던 달은 2월을 끝으로 나는‘강제 집순이’가 된 것이다. 집순이라, 나와는 딱히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도 혼자 카페를 가서 일정을 정리하고 학교 과제를 하면서 하루를 보냈던 나는 이런 상황이 곧 종식될 거란 확신에 가득 찬 믿음만을 가지고 지내왔다. 하지만 상황은 작은 불씨가 더 큰 불로 번져갔고 올해의 절반 가까이 지나와 방황하던 나는 스트레스와 답답함을 느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를 시작하는 것에 한숨을 내쉬며 괜히 일어나기가 싫어진다.“아 오늘도 집에서 뭐하지?”항상 분주하게 준비해서 바깥바람을 맞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는데 아예 불가능해진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던 것일까?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2명의 친구들이 본가로 내려와 드디어 첫 약속을 잡았다 2020년 5월 10일 두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너무 행복했다. 처음 밖으로 나가 꽉 막혔던 마음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각자의 근황을 이야기를 하면서 맛있는 치킨도 먹고 사진도 찍고 좋게 헤어졌다. 헤어지고 나는 이 시간을 더 즐기고 싶어 집까지 걸어갔다. 근데 이상하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고 웃고 떠들었는데 지금 집으로 걸어가는 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나는 원인 모를 눈물을 흘렸고 그렇게 집까지 걸어갔다. 집에 돌아와서는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 앞바닥에 앉아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면서 울었다. 그렇게 잠을 자지 못하고 밤을 꼬박 새워서 울고 결국 나는 새벽 6시에 잠이 들었다. 슬픈 일도 없었는데 그날 밤 울던 내 모습은 마치 시련의 주인공과도 같아 보였다. 그때부터 이유 모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기분이 이상해짐을 스스로 느끼고 괜히 속도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에 대한 의욕이 없어지고 평소에 인스타그램을 즐겨 하던 나는 코로나가 시작되고 난후 몇 개월 동안 접속하지 않았다. 밝게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이 가득한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쳐다보기도 싫었고 친구들과의 소통도 피하고 싶었다. 잠시 나의 삶의 쳇바퀴가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보면서 눈물을 흘렀다. 하루의 시작이 설렘이 가득한 기대가 아닌 버텨야 할 난간과도 같게 느껴졌다. 20살에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여 나의 일과를 자주 기록해왔다. 글을 쓰고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뜻깊었거나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날들을 그때의 감정과 함께 꼭 블로그에 기록해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오로지‘나’라는 사람의 감정에 대해 적을 일이 더 많아졌다. 그렇게 ‘우울’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마다 무작정 블로그에 들어가 기록했다.“언제까지 이런 원인 모를 감정이 갈까?”,“에이, 며칠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그냥 일시적인 걸 거야” 넘겼지만 일시적일 줄 알았던 나의 증상은 꽤 길게 흘러갔다. 그렇게 블로그의 분위기는 점점 어두워져만 갔고, 나중에는 내가 봐도 걱정이 될 만큼 음울하게 변질되어 보였다. 나는 심각성을 깨닫고 학교 커뮤니티‘에브리 타임’에 들어가서 나의 증상을 쭉 써 내려갔다. 느꼈던 모든 증상을 써내려 갔고 글을 게시했다. 몇 분뒤 4개 정도의 댓글이 달렸고“나도 그래”,“힘내”라는 댓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어느 한 댓글 앞에서 멈추었다.“학교 생활상담 센터에서 상담받아볼래? 내가 링크 걸어줄게 한번 가봐!”라는 댓글이 있었다. 나는 이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운영하는 상담 센터가 있는지 몰랐지만 그 댓글을 보고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희망을 찾은 느낌에 바로 링크로 들어가 예약을 했다. 신기하다. 나는 상담이라는 것을 앞에서 말했듯이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다. 접해보지 않았다는 말인즉슨 상담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큰 난간과도 같은 일은 딱히 없었다. 있었다 하여도 며칠이면 금방 다시 활력을 찾고 해결했었던 나였기에 더더욱 나는 이런 상황이 들이닥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는‘김00’이라는 사람은 항상 웃음이 가득하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로 대부분 느낀다. 나도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남들에게 잘 보이는 것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에게는 항상 밝은 이미지가 보이길 원했고 그런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좋아 보이고 싶었던 나는 어느 순간 지쳐버리게 되고 나를 점점 잃어가고 있단 생각에 빠지게 된다. 무엇을 시작할 때“남들이 이렇게 받아들이면 어떡하지?”,“나를 이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라는 물음이 먼저 던져졌고 나는 그 물음에 깊은 고뇌에 빠진다. 도대체 왜?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그‘남들’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왔던 걸까 멈춰진 쳇바퀴에 방황한 체 서서 생각했다.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항상 결론을 짓지 못해 넘어갔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나는 모든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하고 더 이상 잡지 않았다. 물론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일상생활처럼 놀러 다니면서 하루를 보냈다. 친구들에게 미안함을 표현했고 항상 노는 자리에서 빠졌던 거기서도 친구들의 시선을 더 생각하면서 혼자 조마조마했다.“집안에만 있는 내가 이상한 걸까”란 생각까지 들 정도로 여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었다. 그러면서 나의 친구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많은 웃음을 가졌고 그것을 남들에게 보여왔지만 정작 내가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왔고 남들에게 내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아왔다. 그러니 남들이 보는 나는 항상 밝을 수밖에 없다.“미안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나는 딱히 내가 미안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조차도 미안하다는 말을 던지곤 한다. 이렇게 적어내려가는 것만 보아도 내 안의 응어리의 존재가 체감이 될 정도다. 많이 지쳐버린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나는 나의 생각을 다 털어놓고 싶어졌다.
그렇게 예약한 날이 다가오고 줌을 통해 첫 상담 시간을 가졌다. 처음이라 긴장이 될 법도 한데 이상하게 긴장이 들지 않았고 상담사님과 얼굴을 마주 보여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의 편안함을 느꼈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편도 아닌데 끝까지 잘 들어주시고 기억해 주셨다.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갔고 상담이 끝나고 나는 무거운 마음의 응어리가 하나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나와 아는 사이가 아닌 초면인 사람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이 나는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는데 오히려 더 편한 느낌이었다. 나도 할 수 있구나 사실‘상담’이라는 것에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요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상담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나는 말을 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기에 항상 고민하다가 포기해버렸던 적이 많다. 상담을 하는 날이면 빨리 선생님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내 마음을 단지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던 걸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마음을 항상 혼자 짊어지고 왔다. 괜찮을 거라고, 이제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나 보다. 이렇게 터지구나 작은 가방에 아무리 내가 물건을 꾸역꾸역 쑤셔 넣는다고 해도 이미 지퍼를 잠군 가방의 모양은 온전한 가방의 모양은 아닐 것이다. 삐죽삐죽 조금만 건드리면 찢어질 것 같은 불안한 상태일 것이다. 나는 억지로 넣어놓은 물건들을 다시 빼내어 차곡차곡 넣을 만큼만 다시 넣어보려고 한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생각보다 쓸데없는 걱정들을 하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쓴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은 나에게“생각보다 남들은 00 씨에게 관심이 없어요 00 씨가 그 사람들을 전부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다. 남들은 나에게 생각 의외로 관심이 없는데 과한 의식을 하면서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을 더 신경 쓴 건 아닐까?
1년 동안 대구대학교를 재학하였지만 나는‘학생생활상담센터’는 센터에 대해 처음 알았다. 너무 감사하다. 나를 다시 웃게 만들어주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그 댓글을 달아준 학생이 없었더라면 나는 과연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상담을 종료하고 나의 블로그에는 다시 활기찬 향기로 가득해져 간다. 알바도 시작하고 토익학원도 다니면서 평일과 주말을 바쁘게 살아간다. 알바를 마치고 밤공기를 마시며 집에 가는 길은 가볍고도 행복하다.“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바쁜 삶이다.”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내뱉기도 하고 씨익 웃어보기도 한다. 가끔 그때의 기억이 문득 지나가는데 더 이상 생각해내려 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힘들고 방황했던 시절이었기에 하지만 그때의 선생님과의 시간은 영원히 마음속에 간직할 것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어준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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