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상담 후기 공모전 집단상담 부문 도전상 수상작
학생생활상담센터에서 직접 집단상담을 받은 경험을 녹여 만든 에세이입니다.
상담 후기를 읽고 나누시길 바랍니다!
2019년 상담 후기 공모전 집단상담 부문 도전상(3등) 수상작
둥글게 모여앉은 우리
사람들 틈새에서 ‘조용한 아이’로 존재하는 것은 내 오랜 고민이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만남을 동반했다. 사람들은 관계를 통해서 가족, 친구, 동료 등 다양한 이름의 역할을 맡으며 살아가고, 그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만날 때도 있으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오가는 감정들이 벅차다고 느끼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북적이는 사람들 틈새에서 능숙하고 적극적이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늘 책망했기에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과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집단상담에 참여하게 됐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우면서 또다시 여러 사람과 접해야 하는 집단상담에 참여하는 것은 솔직히 망설임을 갖게 했다. 하지만 뭔가 변화할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는 이 기회를 나는 놓칠 수 없었다.
2018년 2학기와 2019년 1학기 모두 기회가 돼서 참여했었는데 둘 다 주제는 대인관계능력 증진 집단이었다. 첫 번째 집단상담에서는 지지적인 집단을 경험해보았고, 두 번째 집단상담에서는 새로운 나로의 도전을 많이 시도해보았다. 집단상담은 ‘안전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나로의 도전을 시도해보는 것’ 이라는 전공 교수님의 말을 좋아하는데 내가 느낀 것을 더해서 이를 말해보자면 집단상담은 ‘두 만남을 통해 우리가 자신을 보는 법을 배우는 과정’ 이다.
첫 번째의 만남은 안전한 환경과의 만남이었다. 집단상담에 참여하게 되면 ‘이 말을 해도 될까?’, ‘어디까지 얘기하면 좋을까?’ 하는 망설임이 들게 된다. 내 고민이 이 집단 안에서 잘 지켜질 수 있을지, 내가 꺼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것이다. 집단상담은 본격적인 회기의 시작 전 비밀보장과 구성원들이 지켰으면 하는 몇 가지 사항을 포함한 서약서를 작성한다. 이것이 내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의 울타리가 된다. 이 과정을 울타리라고 표현한 것은 최소한의 약속에 기반한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집단상담에 참여하며 계속해서 드는 ‘이 말을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깨고 발언하게 되는 것은 각자가 최소한의 약속을 지키리라 믿었기 때문이고, 마음 속의 고민을 꺼내도 좋을 환경이라고 판단되었을 때였다. 둥글게 둘러앉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서먹하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고민한다. 이 고민은 상담의 여러 회기 동안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용기를 낸 발언자가 이야기를 꺼내면 다른 용기를 낸 발언자가 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공감과 격려가 오가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처음으로 터놓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은 용기를 낸 발언자가 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이렇게 최소한의 약속을 믿은 서로가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집단 안은 안전한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비로소 우리는 안전한 환경을 만나게 된다.
두 번째 만남은 새로운 나와의 만남이었다. 집단상담의 첫 회기에는 별명을 짓고 짝꿍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나는 이름을 단순히 발음한 ‘00’로 불리기도 하였고, 좋아하는 것에서 따온 ‘000’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간 나를 설명하던 공식적인 이름에서 벗어나 별명으로 불리는 것은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집단상담을 하며 낯선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고 또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기에 별명을 짓고 짝꿍에 대해 여러 앞에서 소개해주는 첫 시간이 재밌었었다. 어느 날은 역할극을 통해 ‘화를 내는 역할’ 맡은 적이 있는데 내가 화를 내는 것을 굉장히 머쓱하고 어색하게 느낀다는 것과 갈등상황의 중재자가 되는 것을 곤란해하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서 나는 관계의 장면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보이고 또 얼마나 다르게 시도해볼 수 있는지 연습할 기회를 가졌었다.
새로운 나와의 만남은 새로운 시도에 그치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각에서 자신을 바라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인데 이는 집단구성원들이 내게 보내주었던 응원과 지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다른 구성원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피드백 해보는 과정을 통해 나의 경험 내지는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본 적도 있고, 그런 적극적인 시도로 감동한 구성원들을 만났었다. 나는 말을 상냥하게 하고 누구보다 진심을 담은 격려를 잘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대단한 장점을 가졌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소감을 전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해보는 작업을 통해 보일 수가 있었고, 또 내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용기를 낸 이야기를 들어주며 자신이 나에 대해 느낀 것을 내게 말로 전해준 집단구성원들 덕이다. “옆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져요.”,“웃는 얼굴이 참 예쁘셔요”,“쓰는 표현들이 몽글몽글 따뜻해요” 하고 구성원들이 나에 관해 얘기해준 것은 지금까지 나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실감하지 못했던 부분을 봐준 구성원들 덕분에 조용한 아이로 존재하는 것이 괴롭고 힘들지가 않아졌다. 나의 다른 면들이 충분히 나를 관계 속에서 빛나게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둥글게 둘러앉아 있는 우리가 좋았다. 집단상담의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사람들은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지만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 아니야? 라고 할 수 있지만 내 고민이 가장 큰 것 같고 내가 문제인 것 같은 상황에서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집단 안에서 다양한 사람의 경험을 들으며 한 발짝 물러서서 상황을 보는 기회를 얻기도 했고, 다른 사람의 나와는 다른 태도와 행동을 관찰하며 내가 시도해볼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관찰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나 혼자서 상황을 마주했던 이전과는 달리, 집단 안에서 구성원들과 함께 우리가 되어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집단상담의 가장 긍정적인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 각각이 원이라면 집단상담은 하나씩의 원이 둘러앉은 상태이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원은 점차 포개지고, 겹겹이 쌓인 큰 원이 되어간다. 집단상담을 경험하기 전의 내가 단 하나의 선을 가진 원이었다면 집단상담을 경험한 후의 나는 여러 선을 가진 조금 더 단단한 원이 되었다. 우리가 둥글게 모여앉아서 얘기했던 게 내게 얼마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는지 모른다. 앞으로 집단상담을 접할 이들이 둥글게 모여앉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의 이야기를 마친다.
* 본 작품의 저작권은 대구대학교 학생생활상담센터에 있으며, 무단 도용 및 사용을 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