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상담 후기 공모전 심리검사 부문 변화상 수상작
학생생활상담센터에서 직접 심리검사를 받은 경험을 녹여 만든 에세이입니다.
상담 후기를 읽고 나누시길 바랍니다!
2019년 상담 후기 공모전 심리검사 부문 변화상(2등) 수상작
“상처는 아프게 낫는다”
상처는 상처 그 자체 보다는 소독할 때가 더 아픈 법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견디고 나면 치료가 되기 마련입니다. 이번 상담은 저에게 ‘소독’과 같은 과정이었습니다. 상담을 받은 계기를 먼저 말하겠습니다. 때는 어느 해 여름방학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트라우마의 대상인 ‘아버지’와 함께 갔던 여행에서, 저는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수많은 공황발작과 히스테리 발작에 시달리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생생활상담센터에 방문 했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던 중 상담 선생님께서는 더 정확한 진단을 위해 심리검사를 제안하셨습니다. 결과가 나온 후, 저는 제일 먼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제가 히스테리성 성격인가요?” 상담 선생님께서는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깊은 곳에서부터 빠져나왔습니다. 히스테리 발작을 진단 받은 후, 몇 달 동안 거기에만 빠져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이미지가 안 좋은 ‘히스테리’라는 단어가 저의 병명이라고 생각하니,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검사 결과상 저는 정상이었습니다.
그럼 저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무엇이 잘못 이길래, 이렇게 고통 받을까요? 선생님께서는,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있던 정신적 고통들이 쌓여서, 신체적인 질환으로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신체화’라고 합니다. 어떤 정신적 고통들이 마음속에 쌓였기에, 몸이 이렇게 아픈 걸까요? “너무 화가 나요.” 선생님께서는 제 말을 듣고, 제가 아픔을 표출하는 법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화가 나는데도 꾹 참고, 영혼 없이 화가 난다고 말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을 듣고, 상담을 하며 마음 속 아픔들을 표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마음속에 뭉쳐있는 고통들이 너무 컸는지, 말하면서도 아팠습니다. 이때까지 마음속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던 고통의 불구덩이가, 점점 저의 몸 구석구석을 아프게 만들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그 불구덩이를 뱉으려니 그것이 너무 커서 저의 작은 목으로는 뱉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에 진단 받았듯이, 저의 문제의 원천은 가족문제인 것 같았습니다. 그 때의 진단으로는, MMPI 중 가정 문제 척도가 꽤 상승한 점수 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문제를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항상 웃고 다녔고, 가족이 화목한 듯 말하고 다니며 겉으로 행복한 척 했습니다. 그렇지만 숨기는 것만이 답이 아니었나 봅니다. MMPI에 신체화 척도가 높게 나올 만큼, 제 속의 고통 불구덩이가 커졌나봅니다.
가정 문제에 대한 고통을 억압했던 것을 표출하기 위해, 상담 선생님께 저의 과거를 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누구에게도 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니 후련한 듯 한 느낌이 들었고, 울고, 화를 내면서도 계속해서 얘기했습니다. 트라우마 대상인 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얘기 했습니다. 상상일 뿐인데도, 엄청난 공포를 느꼈습니다. 몸이 떨렸고, 입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의 격려로 말이 터졌고, 아버지께 화내는 법도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 과정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상처를 꺼내서 들쑤시는 과정인지, 상처를 소독해서 따가운 과정인지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머리가 띵할 때 까지 펑펑 울고, 자는 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아버지 생신에 집을 방문 했을 때, 제가 많이 나아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말 걸 때도 무섭지 않았고, 짜증도 낼 수 있었습니다. 제 앞에는 저를 때리던 과거의 아버지가 아니라, 아픈 저를 걱정하는 아버지께서 앉아 계셨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아버지를 용서하고, 마음의 병도 떨쳐내고 싶습니다. 상담이 종결되고,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아버지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마음의 병이 신체화 돼서 나타난다.’라는 해석을 들었을 때는 사실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부끄러운 감정이 크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말하는 ‘꾀병’을 부리는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아픈 곳이 많습니다. 신경성 질환은 거의 다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 중에 하나는 위가 자주 아픈 것인데, 위가 아프다고 약국에 갔을 때 약사가 그냥 꾀병이고, 신경을 많이 써서 그렇다고 해서 화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 아픈데, 다른 어디가 아플 수도 있는데 약사가 저렇게 무책임하게 말을 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갈 때마다 저는 제 몸이 걱정되는데, 그저 신경성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짜증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MMPI 검사결과에서 분명히 나타나니까, 부정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공황장애도 그저 마음의 병이 신체화 돼서 나타난 것일까요? 이게 정말인지, MMPI 검사 결과를 듣고 신체적 병이 신경성 이라는 것을 인정한 후, 공황장애가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약물치료의 영향인지, 상담과 심리검사해석의 영향인지, 아니면 복합적인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호전됐습니다. 이전부터 공황장애가 1주일에 2~3번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났습니다. 정말 고통스러웠고, 모든 걸 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는 공황장애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약물 치료의 효과도 있겠지만, 상담을 받으면서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나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담 선생님과 학생생활상담센터에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과거의 아팠던 상담이 끝난 후,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상담 후에 힘들어서 선생님께 못 다한 이야기를 다이어리에 쓰면서 실신할 정도로 울고 잠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마치 상처를 소독하는 것과 같을 것 같다고, 많이 아프다고, 혹시 이 과정이 소독 과정이 아니라 상처를 들춰내서 들쑤시는 과정이면 어떡할지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자신의 손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남자친구 손에는 예쁘게 아문 상처와 흉터가 남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상담을 그만두면 자연적으로 아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이렇게 못난 흉터가 남을 수도 있어. 이게 나중에 너를 또 괴롭힐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상담을 계속 하면서 아픈 치료의 과정을 견디면, 더 빠르고 표시 나지 않게 이렇게 아물 수 있을 거야.” 라고 남자친구는 설명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포기 하지 않고 상담을 이어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처음에 고민하던 공황장애가 많이 나아졌고, 아버지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으니, 저의 상처가 예쁘게 아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상담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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