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상담 후기 공모전 심리검사 부문 성장상 수상작
학생생활상담센터에서 직접 심리검사를 받은 경험을 녹여 만든 에세이입니다.
상담 후기를 읽고 나누시길 바랍니다!
2019년 상담 후기 공모전 심리검사 부문 성장상(1등) 수상작
종이거울
사람은 평생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다고 했던가? 기껏해야 거울에 비치거나 사진에 찍힌 나를 보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은 겉모습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나 나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은 항상 ‘야. 나는 어떤 사람이야?’ 이다. 즉, 남에게 나에 대한 판단을 맡긴다는 것이다. 남에게 비친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 이면엔 나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내부가 아니라 다른 사람, 즉 외부에 있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눈치 챈 것은 아닐까? 스스로 볼 수 없던 나를 비추어 보여준, 종이로 된 거울 ‘MBTI 성격유형검사’로 나를 마주해보았다.
MBTI는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캐서린 쿡 브리그스와 그의 딸 이자벨 브리그스 마이어스가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개발한 성격유형 테스트이다. 다른 성격 검사는 몰라도 MBTI는 한번쯤 들어봤을 만큼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작게는 잡지나 인터넷에서 흥미 위주의 성격 테스트로, 크게는 기업체 등 진로 선택을 위한 인성 검사로 다양하게 쓰인다. MBTI 검사지는 모두 95문항으로 구성되어 있고, 네 가지 척도에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 결과는 E(외향)-I(내향), S(감각)-N(직관), T(사고)-F(감정), J(판단)-P(인식) 중 개인이 선호하는 네 가지 지표를 알파벳으로 표시하여(예: ESFJ) 결과 프로파일에 제시한다. 이에 따라 MBTI의 성격유형은 열여섯 가지 유형으로 나타낼 수 있다.
나의 검사결과는 ENTP였다. 다른 말로 발명가형, 뜨거운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 선의의 비판자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검사를 통해 알아본 나는 생각보다 더 비판적이고 이성적이었다. 평소에 생각을 많이 하고 교육학을 배우며 자아성찰을 많이 해서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던 나의 성향보다 훨씬 극단적으로 치우친 부분도 있었고 심지어 아예 반대인 것도 있었다. 나를 잘 안다고 자신했던 나는 검사지를 해석해주는 선생님의 말에 점점 내가 정말 이런 사람이었나 고민하게 됐다. 처음으로 내 자신을 거울에 비춘 순간이었다.
내가 비판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비판을 하진 않았지만 근거도 없이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기다고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딱 그 정도인 줄 알았는데 검사지에 비친 나는 훨씬 더 비판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맞춤법을 틀리거나 남을 배려않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적을 하고 싶은데 참았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비판적인 내가 남을 많이 비판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검사지에 있었다. 검사지에 비친 나는 남에게 밉보이는 것을 싫어했다. 비판적인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것을 사람들이 선호하기에 비판하고 싶어도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비판을 하지 못해 생긴 내 속의 불만을 ‘난 그다지 비판적인 사람이 아니야’라며 내 자신을 속인 거였다. 가볍게 검사를 받으러 간 내가 본 거울 속 모습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열망한다. 키가 작은 사람들은 키가 큰 사람을 부러워하고 활발하지 못한 사람은 친화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연예인이 입은 옷을 구매하고, 연예인의 메이크업을 따라하는 것은 아마 그런 열망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이때까지 나는 나를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모두가 나와 함께 있으면 즐거워했기에 공감력이 뛰어나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철저하게 나를 비판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말해주었다. 처음엔 ‘문항에 잘못 답했나?’ 의심하면서 다시 살펴봐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이성적인 사람들의 특징을 말해주는데 나의 모습과 일치했다. 즉,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웃으며 공감해주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슬픈 영화를 봐도 운 적이 없던 내가 오버랩됐다. 나는 이성적이기에 쉽게 사람들에게 공감을 못했지만 잘 지내기 위해 그런 척을 한 것이었다. 마치 내가 나쁜 사람처럼 느껴졌다.
평소에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내가 모르던 나의 모습에 실망했기 때문인지 참 내가 부끄러웠다. 그런데 문득 해석을 처음 시작할 때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외향적이고 내향적인 사람들의 차이는 활발하고 소심하고 이런 게 아니라,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과 혼자만의 시간에서 에너지를 얻는 차이에요.’ 일반적으로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지내기 괜찮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좀 답답하다는, 어쩌면 내향적인 사람보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낫다는 편견을 깨준 한마디. 각 특성은 좋다 나쁘다 로 나뉜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것이라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점을 담고 있는 그 한마디가 나에게 크게 와 닿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비판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특성일 뿐이고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검사지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의심하고 어쩌면 부정했던 내 모습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뒤로부터 내 생활이 조금 달라졌다. 굳이 공감이 되지 않는 주제에 대해서 억지로 공감하지 않았고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내 의견을 제시했다. 그런데 결과는 우려했던 것과 달랐다. 이런 내 태도에 난색을 표하고 싫어할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서로 즐겁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눈 것이다. 오히려 그런 토론이 이어지며 내 식견이 넓어지는 것 같았고 억지로 공감하며 웃는 것이 아닌 실제로 이야기를 즐기며 웃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오히려 남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조용한 사람에게 억지로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말을 이어나가려고 노력했던 예전에는 나도 지치고 상대방도 지치는 기분이 들었는데, 내향적인 사람의 특성을 이해하고 천천히 시간을 가졌더니 오히려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MBTI 검사 하나로 내 생활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도 건강해진 것이다.
언뜻 보면 가볍고 단순한 흥미 유발 수준의 검사라고 생각하기 쉬운 MBTI 검사는 내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덕분에 진정한 내면의 나를 대면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나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이 단순히 매체로 접해본 일종의 변형 약식 유형의 MBTI 검사와는 별개로 실제 전문적인 검사는 어디서 행해지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알아보면 의외로 가까운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사회복지관, 대학교 학생상담센터에서 검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대구대학교도 학생생활상담센터에서 재학생을 대상으로 무료 검사와 해석을 해준다. 단순한 흥미와 관심 정도로도 좋으니 남는 공강 시간에 학생생활상담센터를 방문해 MBTI 검사를 받아보자. 내면을 비추는 종이거울로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를 통해 자아를 성찰하고 나와 남을 이해할 수 있다면 한 단계 성숙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작품의 저작권은 대구대학교 학생생활상담센터에 있으며, 무단 도용 및 사용을 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