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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상담 후기 공모전 개인상담 부문 변화상 수상작

등록일 2020-03-24 작성자 이수정 조회수 2658

학생생활상담센터에서 직접 상담을 받은 경험을 녹여 만든 에세이입니다.

상담 후기를 읽고 나누시길 바랍니다!  

 

2019년 상담 후기 공모전 개인상담 부문 변화상(2등) 수상작

 

"나는 이제 나의 책임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하루라도 빨리 학교를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에 졸업 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몇 주 뒤에 졸업을 앞두고 있는 현재의 나는 그때의 고통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 매 순간이 소중하고 아쉽게만 여겨진다. 누군가는 단순히 시간이 약이기 때문에 그저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괜찮아진 거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물론 시간이 흘러 희미해진 기억만큼이나 그때의 감정도 옅어졌을 테지만, 만약 학생생활상담센터를 찾지 않고 오롯이 혼자서 고통을 삭히고자 했더라면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언정 고통에서 벗어났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민을 안고 상담센터를 직접 찾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나의 어려움을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털어놓는다는 사실이 그저 막연하기만 하고, 막연함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혹여나 이야기 도중 횡설수설 하며 방황하는 나를 기다려줄지, 만약 내 어려움을 이해받지 못하면 어떡해야 할지와 같은 불안감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부 부질없는 걱정들이었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큰 용기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불안을 뛰어 넘을 만큼의 울화가 치밀어 올라오던 시점에서야 비로소 센터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대인관계로 인해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고 지쳐있었다.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에게 혼자 섭섭해 하며 상처를 받았다가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면서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커져간 것이다. 때로는 이 부적절한 감정에 대한 원인을 상대방의 무신경함과 배려 없음으로 돌려 단정 짓고자 하며 타인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원했던 것은 나의 속상한 마음 또한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 즉,‘공감이었다. 어쩌면친구라는 이름 아래, 맹목적으로 내 편을 들어줬으면 하는 욕심이 더욱 컸었을 수도 있다

 

  이런 마음을 알아차려 주셨는지 일주일에 한 번, 50분씩 진행되는 상담의 대부분은 나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나갔다. 상담선생님께서는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면서 동시에 나의 생각에 대해 궁금해 하시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공감해주실 뿐이었다. 자연스레 억압해왔던 감정들이 터져 나오면서 기존의 분노는 누그러지고 회피하고자 했던 서운함과 슬픔의 감정을 깨달으며 끝내 울음을 터트릴 수 있었다. 주변으로부터 부정되어 왔던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이 차츰 풀리게 되자, 보다 나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현재의 느낌을 진솔하게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더 나아가 문제 상황을 점차 객관적으로 대면할 수 있게 되면서 모순된 감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나 혼자서만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느낌을 애써 무시하고자 했지만 사실은 마음 불편했던 적이 많았고, 단지 관계가 어긋나는 것이 두려워서 상대에게 맞추고자 노력하다 보니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담 회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상담선생님께 지금의 관계를 정리하고 그들과 마주치지 않게끔 거리를 두고 싶다고 말씀드린 기억이 난다. 그것이 나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동일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의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은 나중에 또다시 이번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라는 상담선생님의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해서는 지금도 어떠한 확답을 내리지 못하였다. 물론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그 관계를 통해 관계에 관한 가치관을 다시금 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또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받길 원한다면 그것은 터무니없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관계란 와 전혀 다른타인과 맺는 것이기에 나의 감정을 온전히 헤아려 줄 수 없으며 서로가 잘 맞기를 바란다는 소망 또한 욕심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받지 못했다고 해서 상처받고 외로워 할 필요가 없으며 타인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 갈 까닭도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며 의문이 생기는 관계라면 굳이 애를 쓰면서 관계를 유지하고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 마음 아파하며 모든 신경을 관계에 쏟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 다를 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다만, 모든 관계가 동일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깊이 있는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이에 비례하는 애정과 노력을 투자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관계에 대한 나의 안일함을 인정해야만 했다. 타인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과연 나는 얼마큼의 노력을 했으며 그저 바라기만 했던 것은 아닌지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소홀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가족, 친구, 연인처럼 다양한 인간관계를 당연하다는 듯이 맺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실상 그 속에 당연한 관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끝날 수 있는 것이 바로 관계였던 것이다

  

  이제는 일 년 정도 지난 과거의 이야기들을 추억정도로 여기면서 담담히 풀어나가고 있다. 가끔은 만약 센터를 찾아가지 않고 혼자서 앓고만 있었더라면 여전히 끝이 난 관계를 과거로 떠나보내지 못하고 지금까지 마음 한켠에 붙잡아 뒀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숙제, 상담선생님의 물음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하였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그 물음이 문제 상황의 책임을 타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분명 나의 행동 또한 문제 상황에 영향을 미친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외부의 탓만 하며 나에 대한 책임을 외면할 수도 있었지만 상담을 통해서 나의 행동을 되짚어 볼 수 있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인간관계란 것은 참 복잡하고 어려워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간관계를 어떻게 형성해 나가고 유지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다르게 행동하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비록 감정적으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러한 경험을 통해 관계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고 관계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이켜 보며 반성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그 흔한 말처럼 고통스러웠던 관계의 경험이 새로운 관계를 위한 기회가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치도록 한다.

 

 

* 본 작품의 저작권은 대구대학교 학생생활상담센터에 있으며, 무단 도용 및 사용을 금함.